새벽江 혹은 13월에부는바람
사랑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이들에게 바친다
신경숙
그때 은서는 생각했다. 완과 살게 되면 그 첫날 말하리라…… 언젠가 내가 절에 가자고 한 적 있었지.
그때 너, 갑자기 절은 왜 가느냐고 물었지. 나 그때 절에 왜 가자고 했는지 끝끝내 말 못했잖아. 지금 말
할게, 그때 못했던 말.
그 절을 잊지 말아. 그 팔월의 햇빛, 황토, 콩꽃들과, 약초들이 무성한 산길 사이의 밭, 들꿩이 간혹 솔숲
으로 날아들었지, 절집 너머 보이던 서해바다, 그 둑길, 철벅 거리던 고인 물소리, 여름 황새가 물에 잠겼
다가 뜰 때, 하마터면 깜박, 앞서 걷는 너의 허리를 붙잡고 울 뻔했지. 잊지 말아, 그 절집의 벗겨진 탱화
나, 바가지 속 시린 물, 단청 아래서 퍼지던 풍경소리 …… 풍경소리 …… 속에, 내게 왔다가 숨을 못 붙이
고 헤어져 가버린 아이를 나, 그 속에 묻으러 간 거지. 그 절집으로 가는 모든 풍경 속에 제사 지내러 갔
던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너 지루하게 하품을 했지만, 나는 그랬던 거였다고.
함께 한방에서 살게 되는 첫날에 나 이 말을 그에게 하려 했지. 우리 다시 아이를 낳기 전에 어디서 우는
아이를 데려다 큰애로 기르자, 지금 어디서 우는 아이가 그때 내게로 온 아이일 거야, 그 애를 큰애로 기
르고 낳은 아이를 둘째로 하자,고. 하지만 우린 그 말을 할 수 있는 첫날을 가지지 못했어. 은서는 침대
모서리에 얼굴을 묻었다. 나, 태어나지 말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