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江 혹은 13월에부는바람
시 백영옥의 '개봉작 다이어리'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시를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 엄마는 후자다. 심지어 딸
의 책도 읽지 않는다. 내가 '고양이 산티' 라는 단편으로 등단을 했을 때, 엄마는 '산티'/평화라는 산스크
리트어를 알아듣지 못해, 기어이 전화기에 대고 소릴 질렀었다. "맞아. 고양이가 삼치를 참 좋아하지.
'고양이 삼치' 라고?"
엄마는 나와 영화 보는 취향도 꽤 다르다. 그런 엄마는 윤정희가 나오는 영화가 보고 싶다고 했고, 나는
이창동이 연출한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렇게 간만에 모녀는 극장에 갔다.
영화를 보다가 나는 가끔씩 엄마의 눈을 힐끔거렸다. 엄마가 영화를 보고 있나, 엄마가 역시나 졸고 있지
는 않나? 그런데 엄마는 울고 있었다. 여자라면 울고 말게 될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아니었고, 윤정희가
만나는 사람마다 "시는 어떻게 쓰나요? 시상은 어디에서 오나요? 우리 안에는 시가 감춰져 있다고 하던
데?" 이런 질문을 하고 돌아다니는 대목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우리 엄마는 삶의 아름다움을 압축한 '시
' 와 손자가 저지른 성폭행 사건을 연결시키는, 영화의 다양한 복선과 도덕적 딜레마를 골몰하기에는 꽤
직선적인 사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물었다. "울더라, 엄마."
"나도 명사가 생각 안 날 때가 많거든. 국자 들고 국자 찾으러 다니고. 세월 흐르는 게 서글퍼. 김희라 있
잖아. 나 젊을 때, 그 양반이 쌈질하는 역할 되게 많이 했거든. 하늘도 펄펄 날아다닐 것 같더니만, 쪼그
라들어선…. 비아그라나 먹고." "그래서 시시해?"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여자 아가들이 훌라후프 돌리는 게 너무 예쁘지 않니? 그렇게 예쁜 아가들이 크면 사는 게 또 뻑뻑해질
텐데." '시'가 추구하는 것이 아름다움이라면, 그토록 예쁜 아가들이 자라 성폭행당해 자살했다는 사실
이 엄마로선 울화가 치미는 일이었을 것이다. "윤정희, 영화에서 30년 만에 봤는데 예뻐. 멋있게 늙었어
." 나는 나이 든 여배우의 주름에서 세월을 알아보는 엄마의 안목에 놀라서, 시 공부를 해보는 건 어떻겠
느냐고 물어보려다, 관두었다. 엄마의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아까, 영화에 나온 시인 있잖아. 키 작고, 구수하게 생긴 아저씨. 우리 교회에서 강연했었거든. 나도 들
었는데." 엄마의 입에서 '김용택' 이란 이름이 나오는 순간, 예감했다. 엄마가 머지않아 '시'를 배우게 될
것임을. 시집 한 권 읽지 않은 여자의 DNA에 내가 빚진 게 참 많다는 것을 말이다. "얘, 근데 말이야. 무
슨 영화에 음악이 하나도 안 나오니? 너 들었니, 그 강물 소리? 어쩜 그리 슬프던지. 난 꼭 여자아이 울음
소리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