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바람 강물소리

나이듦,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장기오

13월에부는바람 2013. 9. 9. 19:06

 새벽江 혹은 13월에부는바람

 

 

나이듦, 그 쓸쓸함에 대하여         장기오

 

 

 

 

 

 

원제, 40년 잔뼈 굵은 조명 감독이 쓰러졌다

 

우리는 검은 양복을 차려입고 다시 만났다.  그새 중늙은이가 되어 흰머리는 더 늘어났고 너나없이 대머리

다.   우리는 슬픈 얼굴을 하고, 부조금을 내고, 안부를 묻고, 술을 들이키며 고인을 기억했다.  느닷없이

그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도대체 믿어지지가 않았다.  새해 벽두에 그와 문자로나마 덕담을 주고받

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가벼운 감기처럼 며칠을 앓다가 그냥 자듯이 영면(永眠)했다.

 

방송은 유행(trend)의 문화다.  그리고 시청 타깃이 주로 젊은이들이다. 당연히 연출자들이 젊다. 나이

연출자는 젊은이들의 사고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이유로,  늙은 스태프들은  젊은 연출자들이 다루기 거

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거의 배제된다.    사람들은 묻는다. 외국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장들이 많은데 왜

우리는 그런 감독이 없느냐고.  우리는 안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대부분이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

데도 빈둥거리는 우리들을 위로하기 위한 수사(修辭)라는 것을.

 

그러나 조명 감독인 그는 정말 열심히, 나이 티 안 내고 젊은 연출자 밑에서 묵묵히 일했다.   우리는 그를

렸다. 그들 스태프들은 작품당 계약을 하기 때문에 현장에 있지 않으면 생계가 막연해지리라는 것을 알

고는있지만 더 이상(以上) 하면 건강에 이상(異常)이 올지도 모른다고 충고했다.   그는 고집했다.  자신은

아직 건강하다며 그리고 오히려 우리의 게으름을 나무랐다. 내가 우려한 것은 젊은 연출자들의 연출 패턴

이 나이 든 사람들이 따라가기에는 너무 비합리적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의 연출플랜(콘티)을 확고히 하고

현장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같은 장면을 수십 번 찍기를 되풀이 한다.  촬영 현

서 40년 잔뼈가 굵어온 그로서는 짜증이 나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참고 견디며  30년 이상 어린 연출자의 지시를 불평없이 받아들였다.    그걸 수치로

여기기에는 가장(家長)으로서의 의무가 더 절실했기 때문이리라. 밤을 새우는 일은 다반사고 자더라도

너 시간이 고작이었다.  일이 끝나면 며칠을 죽은 듯이 자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계가 오고 만

것이다.

 

우리는 낮은 목소리로 그의 장인(匠人)정신을 이야기했으며,  10 · 20대 위주의 드라마를 걱정하고 막장으

로 치닫는 TV를 개탄했다.  그리고 열악한 스태프들의 현실을 걱정하고, 밥과 김치를 구걸하는 쪽지를 남

기고  지하방에서 홀로 외로이 죽어간 시나리오 작가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서글픈 심정으로 주고받았다.

두잔 술이 들어가면서 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친 놈, 젋은 놈들의 얄팍한 공치사에 홀려 자기 몸은

생각지도 않고 천방지축으로 날뛴 미련한 놈이라고 거품을 물었다.

 

후배들이 드나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술청에 앉은 우리들을 어떤 후배가 알은 채 했고, 또 요즘 후배

이 선배들 대접을 제대로 못 한다고 흥분했다.   우리는 듣고만 있었다.  그들도 선배들을 무시하기는 마

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들도 우리의 길을 걸을 것이다. 후배들의 섭섭함에 흥분하다 시간이 지나

면 체념하고 그러다 잊어 버린다. 그리고 오늘같이 조우하더라도 후배들은 '누구더라' 하는 생뚱한 얼굴로

선배들을 쳐다볼 것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우리는 영안실을 나왔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어슬렁거리며 오랜만에 여의도를 거

다. 골목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고, 한때 무시로 드나들었던 술집 간판은 없어지고, 요란하고 낯선

간판들이 내걸렸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별이 빛났다.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고, 뒷걸음으로 바람을 헤치

며 걷기도 했다. 여의도의 불빛은 여전히 찬란했고 포장마차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이제 더는 그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조금은 쓸쓸해하며 우리도 이제 조만간 그처럼 죽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횡단보도 앞에 섰다.  동행했던 사람은 길 건너 버스를 타야 한다며 손을 내밀었다.  "자주 좀 만납시다."  "

럽시다. 자주 만나 소주나 한 잔씩 합시다."  악수를 하고 그는 길을 건넜다. 그러나 자주 만날 수 없으리

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횡단보도 중간에서 그는 뒤를 한 번 돌아다보며 손을 번쩍 들었

다.  나도 손을 마주 들어주었다.   그가 인파에 섞여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다보았다.  죽은 그와

리고 방금 헤어진 그와 나는 상당히 많은 드라마를 같이했고 상(賞)도 많이 받았다.     가망 없는 일이긴

하지만  만약 내가 드라마 연출을 다시 하게 된다면  우리는 함께하기로 다짐을 했었다. 술에 취해 벌건 얼

굴을 손으로 한 번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이 감독, 잘 가시오.   이승에서의 수모와 설움은  다 잊어버리고  그곳에서는 일한 만큼 제대로 대접받고

간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지내길 빕니다."                                                       장기오. 전 KBS 大PD

 

2011. 3. 2(수)  조선일보 A33  오피니언면 상단의 에세이다.   원제는  '40년 잔뼈 굵은 조명 감독이

러졌다'                             새벽강이 타이틀 바꾸고  수작업으로 옮긴 건   2011. 3. 20(日)

 

 

 

 

떠나가는 배 / 정태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