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江 혹은 13월에부는바람
수퍼스타를 부르는 세상 윤평중
키 163cm 중졸 허각의 인생역전 우승. 그러나 순간의
판타지가 끝나면 영원한 회색의 리얼리티가 재개된다
한 케이블 방송의 가수 선발 프로그램이 화제다. 매주 시청률 신기록을 경신한 '슈퍼스타 K 시즌2' 는 '한
국의 폴 포츠' 허각(25세)이 우승하면서 대단원을 맺었다. 130만명이 넘는 참가자가 겨룬 몇 개월의 대장
정 끝에 그가 '마지막 11명'에 진입했을 때 허각의 우승 가능성에 주목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가 '최후의
3인'에 포함되었을 때조차 허각은 '탈락 1순위'로 거론되었다. 노래는 잘하지만, 키 163cm에 중졸 학력
의 환풍기 수리공인 평범하기 그지없는 청년의 스타성이 경쟁자들에 비해 너무 쳐져 보였기 때문이다. 그
랬던 그가 '최후의 3인' 중 가장 먼저 결승에 오르더니 기어코 '일생일대의 사고를 치고' 만다.
심사위원 평가 30%, 시청자 투표의 반영 비율이 70%를 점하는 상황에서 노래를 뺀 '스펙'이 거의 없는
그의 처지는 크게 불리했다. 훨씬 준수한 인물에 학력까지 좋은 데다 노래도 잘해 대중적 호소력을 가진
경쟁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래만은 내가 최고' 라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는 폭발적 가창력을 연
이어 선보이면서 최후의 승자가 된 허각의 뜨거운 눈물 앞에 시청자들은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드
라마보다 더 극적인 인생역전 이야기에 큰 대리만족을 체험한 것이다.
'키 작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기획사 오디션에서조차 노래 부를 기회를 얻지 못한' 불공평의 바다를 오직
실력 하나로 헤쳐나간 이력이 "공정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고 극찬한 사람도 있었다. 촌철살인의 독
설로 유명한 심사위원조차 허각의 도전이 "희망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고 할 정도였다.
여기서 일단 흥분을 절제해 '이 감동적인 성공담이 판타지인가, 아니면 리얼리티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보자. 천신만고 끝에 우승한 허각이 상금 2억원과 고급 차에 음반 발매의 기회까지 잡은 건 물론 실화다.
세 살 때 엄마와 헤어졌고, 상금으로 아빠, 쌍둥이 형과 같이 살 거처를 장만하겠다며 울먹이는 주인공은
피와 살을 가진 실존인물인 것이다. 출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 무대 위뿐 아니라 무대 뒤와 막간
에 벌어진 일상의 편린을 재구성해 보여준 방송 전략은 그들도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임을 시청자에게 실
감시켰다.
시청률 대박의 성공신화는 그저 얻은 게 아니다. 누구나 비슷한 평범한 일상 속에 잠긴 출연자들의 민얼
굴을 그대로 드러내는 전략은 우리와 그들의 동류의식을 일깨운다. 엎치락뒤치락하는 경쟁과정에서 승
패가 가려지며 승자에게 조명이 집중되는 것도 사회생활을 빼닮았다. 효과적인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감
정이입을 끌어낸 요체는 여기에 있다. 여기까지가 리얼리티다.
그러나 '슈퍼스타 K 이야기'가 진짜 사회와 다른 점도 적지 않다. 경쟁자들이 우여곡절 끝에 평범함의 껍
질을 벗고 비범함의 단계로 진화해 가는 편재는 다분히 판타지의 색깔을 띤다. 최종 경연(競演)의 탈락
자들이 오히려 생존자를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는 건 탈락자 자신이 이미 가수의 반열에 진입했기 때문이
다. 그들은 더 이상 시정의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아니라, 준(準) 연예인이 된 것이다. 젊어서이기도 하겠
지만, 꿈이 바로 앞에 있는 관계로 그렇게 서로 너그러울 수 있는 것이기도 할 터이다.
그러나 진짜 세상은 너그럽지 않다. 이 말은 청춘의 순수함을 냉소하는 게 아니라, '슈퍼스타 K'의 구도
자체가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한' 단막극적 목적론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상업적 이익을 지향
하는 정교한 문화산업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슈퍼스타 K 시즌2' 의 주말이 끝난 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일상이 다시 시작된다. 내년에 더 찬란한 모
습으로 '시즌3' 가 등장할 때까지다. 순간의 총천연색 판타지가 끝난 후 영원한 회색의 리얼리티가 재개
된 것이다. 이 '판타지 리얼리티쇼' 에 열광한 시민도 그렇지만 우승자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프로
가요계의 냉혹한 현실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단상(斷想)에도 불구하고 메마
른 우리의 가슴을 적시는 수퍼스타의 출현은 때로 얼마나 소중한가! '수퍼스타 허각' 이 심금을 울리는
초심(初心)의 노래로 차가운 세상을 조금이나마 덥히길 바랄 뿐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