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바람 강물소리

아저씨 가라사대 / 윤용인

13월에부는바람 2013. 8. 29. 15:09

 새벽江 혹은 13월에부는바람

 

 

아저씨 가라사대         윤용인

 

 

 

 

 

 

상대방을 배려했다고 뿌듯?  그걸 느끼는 건 받는 쪽이야!

 

고부간의 갈등에 관한 글을 하나 썼더니 그것을 보고 여자 후배가 고민 상담을 해왔다.  인류가 망하는

지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각각의 사연 속에서 대립하리라 생각했지만 내 후배만큼은 아닐 줄 알았다. 

녀의 시어머니는 후배를 인터넷 아이디로 부를 만큼 생각이 젊은 분이었다.   때 되면 종류도 다양하게 김

치를 담가 올려 보내고,  고가의 명품 가방과 구두를 며느리에게 선물하며, 손자들의 옷도 일일이 다 챙겨

준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자기 주관이 명확하지만 예의 바른 후배였으니,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라고

다들 부러움 섞인 한마디씩을 한 것이 얼마 전이었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시어머니 때문에 이혼까지 고

민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깜짝 놀랄 수밖에.

 

가수 양희은씨가 부른 '인생의 선물' 이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만약에 누군가가 내게 다시

월을 돌려준다 하더라도  웃으면서 조용하게 싫다고 말을 할 테야'  후배를 본 순간 문득 저 노래가 떠올

랐던 것은,  나 역시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지독했던 고부 간의 갈등을 재관전하

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와 아내의 그 미묘하고  때로는 노골적인 신경전과 대립 사이에  샌드

위치로 끼워져서 양쪽의 비위를 맞추고 정치를 하고 아양을 떠는 해답 없는 감정노동은 생각만 해도 고개

저어진다.  그것을 다시 하라는 것은 군대를 한 번 더 가라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악몽이다.

 

"둘째 아이를 낳고 집에 오니까 커튼이 바뀌어 있는 거예요. 꽃무늬 레이스로.  아무리 시어머니지만 제가

사는 집인데 너무하다 싶어서 커튼을 떼었더니 노발대발하시더라고요.  저는 아이들 옷도 제가 직접 만들

입히고 비싼 가방 같은 것은 집에 두는 것도 부담돼서 싫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어쩌다 집에 오셔서 당

신이 사준 옷을 손자들이 입지 않고 있고, 당신이 사준 가방을 제가 들고 다니지 않으면  당신을 무시한다

고 또 화를 내세요."

 

시어머니의 눈에는  천조각을 기워서 만든 옷이나 애들에게 입히고 자신도 입고 다니는  며느리의 촌스러

이 견딜 수 없었겠지만, 며느리는 모든 것을 자신의 욕심으로 맞추려는 시어머니의 행동을 폭력으로 받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후배의 시어머니 역시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담고 있을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을 남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정(情)과 배려는 상대가 느끼는 것이지 내가

단하고 생색내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관계가 수평이 아닌 수직의 권력 관계일 때, 위

서 있는 사람은 늘 자기 욕망의 과잉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 내 앞에서 울먹이는 후배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시어머니에게 미안하지만)  '뒷담화' 뿐이다.

수년의 관전자로서 내가 체득한 지혜이다.     친정 오빠나 된 양, 한 사발의 욕을 시어머니에게 들려준 후,

지막은 친정 아빠처럼 곰삭은 한마디로 마무리한다.    "지금은 힘들더라도 지나고 나면 다 마음이 아픈

야.   우리 집사람도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니까  생전에 더 잘해 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두고두고 후회

하더라. 이런 일에 해결책이 어디 있겠느냐. 자식 된 자가 더 많이 이해하고 참는 수밖에."   윤용인

 

노매드 미디어 & 트래블(www.nomad21.com) 대표(2010)          2010. 9. 1(수)  조선일보 A24 기획면

우측 박스 포장.                     '배려'에 대한 글을 새벽강이 수작업으로 옮기다.  2010. 11. 23(수)

 

 

 

 

인생의 선물 / 양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