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결별 / 김지하

13월에부는바람 2013. 7. 2. 15:49

 새벽江 혹은 13월에부는바람

 

 

결별         김지하

 

 

 

 

 

 

결별(訣別)         김지하(金芝河)

 

잘있거라 잘 있거라

은빛 반짝이는 낮은 구릉을 따라

움직이는 숲그늘 춤추는 꽃들을 따라

멀어져가는 도시여

피투성이 내 청춘을 묻고 온 도시

잘 있거라

낮게 기운 판잣집

무너져 앉은 울타리마다

바람은 끝없이 펄럭거린다

황토에 찟긴 햇살들이 소리지른다

그 무엇으로도 부실 수 없는 침묵이

가득 찬 저 웨침들을 짓누르고

가슴엔 나직히 타는 통곡

닮아빠진 작업복 속에 구겨진 육신 속에 나직히 타는

이 오래고 오랜 통곡

끌 수 없는 통곡

잊음도 죽음도 끌 수 없는 이 설움의 새파란 불길

하루도 술 없이는 잠들 수 없었고

하루도 싸움 없이는 살 수 없었다

삶은 수치였다 모멸이었다 죽을 수도 없었다

남김없이 불사르고 떠나갈 대륙마저 없었다

웨치고 웨치고

짓밟히고 짓밟히고

마지막 남은 한줌의

청춘의 자랑마저 갈래갈래 찢기고

아편을 찔리운 채

무거운 낙인 아래 이윽고 잠들었다

눈빛마저 애잔한 양떼로 바뀌었다

고개를 숙여

내 초라한 그림자에 이별을 고하고

눈을 들여 이제는 차라리 낯선 곳

마을과 숲과 시뻘건 대지를 눈물로 입맞춘다

온몸을 내던져 싸워야 할 대지의 내일의

저 벌거벗은 고통을 끌어안는다

미친 반역의 가슴 가득가득히 안겨오는 고향이여

짙은 짙은 흙 냄새여 가슴 가득히

사랑하는 사람들 아아 가장 척박한 땅에

가장 의연히 버티어 선 사람들

이제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다시금 피투성이 쓰라림의 긴 세월을

굳게 굳게 껴안으리라 잘 있거라

키 큰 미루나무 달리는 외줄기

눈부신 황톳길 따라 움직이는 숲그늘 따라

멀어져가는 도시여

잘 있거라 잘 있거라

 

김지하 시집 황토(黃土)에서

 

 

 

 

117

떠나가는 배 / 조용필

 

 

 

 

 

 

 

 

김지하 시집 황토(黃土).     한국의 민중적, 민족적 서정시사(敍情詩史)에  굵은 획을  그은 기념비적

인 고전(古典).     한국  현대시사(現代詩史) 속에서 가장 역사적이고 현실적이며,  4·19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 한일협정조약 조인과 그에 반대하는 데모, 월남파병, 군사독재화, 산업화  등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병고(病苦)들과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 피어난 시인의 처녀시집.

 

강압적이고도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전통적 농촌 사회가 애처로운 몰락의 길에 접어든  1960년대

씌여진 이 '황토'의 시편들은, 빼어난  '저항적 서정성'의 세계를 보여줄 뿐 아니라 나아가 '민족적 서

정성'의 절경(絶景)을 펼치고 있다.     시인 김지하는 1941년 전남 목포에서 출생, 1966년 서울

미학과를 졸업했다.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으로 첫 투옥, 이후 군사정권 아래서  투옥, 재투옥의 쉼없는 탄압을 받았다.  수

많은 아름다운 민중서정시들과  저 유명한 '오적(五賊)'을 비롯한 담시(譚詩)들을  1970년대 초중반

잇달아 발표, 전세계에  그 시적 탁월성이 널리 알려졌다.    1975년에 '제 3세계 노벨상'으로 일컬

지는 '로터스 특별상'을, 1981년엔 '크라이스키 인권상'을, 1993년엔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1994 ― 1995년에 출간된  '중심의 괴로움'  '별밭을 우러르며'  '검은 산 하얀 방'  '예린

·1, 2'  '빈 산' 등이,  산문집으로는 1980년대의 삶이 처한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중요한 해결의

을  제시한  '틈',  생명사상을 평이하게 설파한  '밥',  동학사상을  탁월하게 해석한  '동학이야기' 등이

다.                                      1995년 솔출판사 발행 김지하 시집 '황토' 안쪽 날개에서.

초딩 때 우연히 마주한 황토. 새벽강 가슴을 저몄다.  혼의 사내 김지하.  황토는 그가 첫 사자후를 터

트린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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